‘장안면 봉비리’에 있는 진사래보(進士來洑)에 관한 정보입니다.
1. 진사래보의 유래
조선 정조 시대, 보은군 속리산면 봉비리에 살던 정가묵(鄭可默)이라는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.
– 배경: 정가묵은 성균진사(成均進士)에 1등으로 합격한 인재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. 그는 마을 앞의 넓은 땅이 수리 시설이 없어 황무지로 버려져 있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습니다.
– 공사 과정: 당시 삼가천은 평소 물이 자갈 속으로 스며들어 물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. 정가묵은 자신의 막대한 재력과 인력을 동원하여, 상류인 ‘북두연’에서부터 물길을 파 내려오는 난공사를 주도했습니다.
– 명칭의 유래: 이 물길 덕분에 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게 되자, 마을 사람들은 정진사(정가묵)의 공을 기려 이 보를 ‘진사래보(進士來洑)’라 부르고, 그 주변 들판을 ‘진사래들’이라고 불렀습니다.
2. 역사적 의미와 변화
– 인간 의지의 승리: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던 냇물 끌어오기 사업을 개인의 집념과 공익심으로 완수해낸 사례로, 지역 사회에서는 한 인간의 의지가 자연을 극복하고 마을을 풍요롭게 만든 상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.
[이후 변화]
– 1960년 삼가저수지가 축조되고, 1979년 농지 정리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진사래보는 현대적인 수리 체계 속에서 안정적인 옥답을 만드는 기반이 되었습니다.